이 책에 실은 전 작품은 발표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난 원전을 원본으로 삼았다. 그리고 최대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이 책의 수록 작품들 중에서 이미 출간된 작품들은 보조 자료로 활용했다. <몽조>의 경우 북한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현대조선문학선집》 1편에 실린 <몽조>를 참고했다.
최대한 원전에 충실했으며 현대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작품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현대어 표기로 바꾸었다.
특히 이 책에 수록된 <다정다한>은 본래 발표 당시에는 완전한 한문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한문 해독이 어려운 독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이 책에서는 최대한 현대어 표기로 고쳤다. 그리고 모든 작품에는 그 말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어려운 부분들에 편저자가 주석을 달았다.
《송뢰금》은 발표 당시부터 미완성 소설이었기에 이 책에서도 미완성된 상태로 수록되어 있다.
1. 문학사의 진실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광수의 《무정》이란 작품이 ‘최초의 근대소설’이라고 얘기할 줄 아는 상식을 지니고 있다. 이 상식은 입시위주로 편재된 우리나라 제도 교육의 반복 학습에 힘입어 우리 국민들에게 일종의 진실처럼 인지되어 버렸다. 《무정》의 문학사적 의의를 묻는 문제 —```물론 대단히 소박한 차원에서— 가 국어과 문제로 여러 차례 출제된 까닭에 이 작품명과 그것의 문학사적 의의를 의외로 많은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식은 한국 근대 문학사를 오해하게 하는 결과를 강하게 낳고 말았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상식과는 거리가 먼 몰상식이라고 말해야 한다. 교사나 학생들이나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이광수의 《무정》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소설로 ‘외우면서’ 마치 이 작품이 나오기 이전에는 아예 소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알고 있었으니 참으로 우스운 상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앎이란 터무니없을 정도로 소박할 수 있겠으나 문학사의 진실은 그렇지 않다. 문학사의 진실은 한 천재적 작가에 의한 장르의 출현과 전개, 완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광수의 《무정》이 ‘최초의 근대소설’로 탄생하기까지에는 다양한 서사장르의 활발한 교섭과 접촉 과정이 요구되었다. 이런 과정이 전혀 없는데, 이광수의 《무정》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독자들에게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고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이광수의 《무정》이 출간되기 이전의 역사의 시간을 우리는 흔히 개화기로 부른다. ‘밖으로부터 밀어닥치는 외세・제국주의의 침략과 이에 대응하는 민족적 자주 정신의 확립이 긴요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전근대적인 사회 체제를 혁신해 가야 했던 두 개의 착잡하고 거창한 과제를 안고 있었던 시대’1) 인 개화기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유형의 소설들이 갈등하고 경쟁한 시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