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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부조리 문학의 대표작 카뮈의 《페스트》 페스트로 인해 모든 자유를 억압받는 상황, 평온한 삶을 덮친 부조리와 모순 속에 큰 감옥에 갇힌 공동체의 운명을 직시하고 낙관적인 기대를 걸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성실함으로 대결하는 의사 리외와 주변인물을 통해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게 대수로운 일이 아님을, 사랑이 자신의 표현을 발견하는 데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루와 다정히 지내왔는데도 그날 저녁 그들의 우정은 표현되지 못했다. 페스트를 겪고 우정을 느끼고 언젠가 추억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확신만이 그가 승리한 점이었다. 인간이 페스트와의 인생 노름에서 이길 수 있는 건 순전..
부조리 문학의 대표작 카뮈의 《페스트》

페스트로 인해 모든 자유를 억압받는 상황, 평온한 삶을 덮친 부조리와 모순 속에 큰 감옥에 갇힌 공동체의 운명을 직시하고 낙관적인 기대를 걸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성실함으로 대결하는 의사 리외와 주변인물을 통해 부조리에 맞서는 인간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게 대수로운 일이 아님을, 사랑이 자신의 표현을 발견하는 데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루와 다정히 지내왔는데도 그날 저녁 그들의 우정은 표현되지 못했다. 페스트를 겪고 우정을 느끼고 언젠가 추억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확신만이 그가 승리한 점이었다. 인간이 페스트와의 인생 노름에서 이길 수 있는 건 순전히 그에 대한 체험과 기억뿐이었다.”

《페스트》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작가의 유머니스트다(umanist, 휴머니스트보다 폭넓은 뜻으로 사용된다). 카뮈에게 부조리는 전쟁, 독재, 감금과 억압, 차별, 빈곤, 질병과 같이 순고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것과 이를 작동시키는 사상이다. 리외는 부조리에 반항하는 주체로서 그의 내면을 통해 삶에 대한 애착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는 분에게)

“리외는 창문을 열었다. 도시의 소음이 쏟아지듯 크게 들려왔다. 이웃 공장의 반복되는 기계톱 소리에 기운을 냈다. 매일매일의 노동, 그것이야 말로 확실성이 있다. 어설픈 기대나 무의미한 동선에 얽매어 어물거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뿐이다.”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죽음을 정당화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내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오랫동안 부끄러웠죠. 아무리 간접적이었다고 해도,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고해도 나 역시 살인자와 다름없다는 사실이 죽도록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게 만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몸짓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페스트의 도가니에서살고 있는 셈이지요. 환자가 되는 건 피곤한 일입니다.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몇몇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는 해방될 길 없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죠. 이곳에서는 모두들 페스트 환자니까요. 나는 죄 없는 살인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그리 큰 야심은 아니죠.”

“어두침침한 항구위로 공식적인 축하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온 도시가 함성을 길게 울리며 이를 찬양했다. 코타르와 타루, 죽은 자든 범죄자든 그가 사랑했으나 잃은 사람들은 모두 잊혀졌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그를 통해 그들의 힘, 허물없음과 모든 슬픔을 넘어 자신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빛깔 불꽃이 점점 세차게 하늘로 피어오르며 거리의 함성이 테라스 가까이로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리외는 이야기하기로 결심했다.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틈에 끼지 않기 위해, 페스트에 휩쓸려간 사람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기 위해, 그들에게 가해진 부당함과 폭력의 최소한의 기억만이라도 남겨놓기 위해 그리고 재난 속에서 배울 수 있었던, 인간은 경멸 아닌 찬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그대로 말해두기 위해서 말이다.” (본문 중에서)

분량이 많거나 어려운 책을 읽으면 소화가 되지 않아 체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어느 시인의 문장처럼 “펼쳤다가 내려놓는 형편없는 독서”를 하게 된다. 범우다이제스트는 독자들이 문학의 향취를 물큰 느끼면서 또한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기획했다.
다이제스트(Digest)는 ‘요약’ ‘소화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요약은 자신이 소화한 내용으로 자기만의 이해의 속도를 정리하는 일이다. 다이제스트를 통해 속도와 깊이를 갖는 독서의 방식을 고민했다. 독자들과 나눌 수 있는 고민이기를 고대하며 다이제스트를 통해 작지만 단단한 독서가 가능하길. 새로운 독서와 독자의 자리를 고민했다. 조금 다르고 특별한 읽기를 통해 부정적 긍정성으로서 읽기의 효용을 생각했다.
범우다이제스트를 통한 세계문학의 복기. (편집자의 말)
알베르 카뮈는
1913년 11월 7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콘스탄틴 주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마른 전투에서 아버지 뤼시앵 카뮈가 전사하고 청각장애 어머니 카트린느 생트와 알제 시의 빈민가 벨쿠르구의 리용가로 이사한다.
1918년 오메라가의 공립초등학교 입학,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선생님 덕분에
1923년 10월 알제 중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훗날 그가 회고한 것처럼 그는 자유를 마르크스에게서 배우는 대신(대학시절 그는 한때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었다) 가난 속에서 배웠다.
1930년 바칼로레아(대학 입학자격 국가고시)에 합격, 운동을 좋아하는 청년으로서 알제 대학 축구단 입단하지만 폐결핵 증상이 나타난다.
1931년 알제 대학 문학부 상급반 수업에서 장 그르니에를 만나게 되고 카뮈에게 평생의 스승이 된다.
1934년 첫 번째 결혼을 하고
1935년 알제 방송 극단의 배우로 알제리 각지를 순회공연하며, 《안과 밖》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노동극단을 창단하여 말로의 《모멸의 시대》를 각색해 상연하고 정치극 〈아스튀리의 반란(Révolte dans les Asturies)〉을 공동집필한다.
1936년 플로티노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을 통해 본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쓴 졸업논문 〈기독교와 신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이 통과되고 알제의 샤를르 출판사에서 《아스튀리의 반란》을 간행한다. 말로에 관한 평론 집필 시도하고 그 해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다.
1937년 건강상의 문제로 철학 교수 자격시험을 포기하게 된다. 샤를르 출판사에서 《안과 밖》을 간행하고 극단 〈에퀴프〉를 창단한다.
1938년 《이방인》 집필을 시작하고 《알제 레퓌블리캥》에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며, 10월 20일에는 사르트르의 《구토》 서평을 쓴다. 그리고 같은 해 〈칼리굴라〉를 집필한다.
1939년 단편 〈여름〉 발표, 《결혼》을 발간하고
1940년 재혼을 한다. 알제리에서 추방되어 파리로 망명해서 《파리 스와르》지의 기자로 일한다. 5월 《이방인》 집필을 끝내고 9월 《시지프의 신화》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1941년 《시지프의 신화》 탈고하며, 멜빌의 《모비딕》 영향으로 《페스트》의 집필을 준비한다.
1942년 《이방인》이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간행된다. 《콩바》지에 참여해 레지스탕스 운동에 동참한다.
1943년에는 《콩바》지의 파리 주재기자가 된다. 갈리마르 출판사에 교열위원으로 입사한 뒤 《콩바》지의 지하 발행, 《시지프의 신화》 간행하고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상권을 간행한다.
1944년 사르트르를 만나 친분을 맺는다. 5월 마튀랭 극장에서 희곡 〈오해〉를 상연하고 같은 해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하권을 간행한다.
1945년 에베르토 극장에서 〈칼리굴라〉 상연,
1947년 7월 《페스트》 간행해 비평상을 수상한다.
1948년 마리니 극장에서 〈계엄령〉 상연,
1949년 12월 에레르토 극장에서 〈정의의 사람들〉을 상연하고
1950년 《반항적 인간》 탈고해 1951년 10월 간행한다.
1952년 혁명관 논쟁으로 사르트르와 절교하고 11월 프랑코 정부의 가입에 항의하여 유네스코에서 탈퇴한다. 오스카 와일드 전집에 〈감옥 속의 예술가〉라는 제목의 서문을 집필한다.
1953년 6월 동베를린 폭동 민중들을 지지했으며 7월 연출가로 복귀한다. 1954년 《여름》 간행을 간행하고
1956년 5월 《전락》 간행,
1957년 3월 《적지와 왕국》을 간행한다. 10월 17일 스톡홀름 왕실아카데미에서 카뮈에게 노벨문학상 수여하기로 결정한 뒤 12월 10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이어 《스웨덴의 연설》을 간행한다.
1959년 2월 앙트완느 극장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악령》을 각색해 상연하고 소설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0월 〈악령〉 지방 순회공연을 하고
1960년 1월 4일 파리 동남쪽 몽트로의 빌레블레뱅 근처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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