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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작품집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 는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州의 오크 파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사냥과 낚시를 즐겼고, 어머니는 음악을 좋아하는 신앙심 깊은 여인이었다. 여름이면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북부 미시간의 왈룬 호반에 있는 별장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내성적인 어머니보다 행동적인 아버지를 닮은 헤밍웨이는 고교 시절에 풋볼, 수영, 권투, 음악, 사냥 그리고 문학 활동에 취미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체험을 쌓았다. 그런 경험들이 훗날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일관된 소재素材가 된다. 1918년 그의 나이 19세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적십자 요원으로 복무 중 중상을 입고..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 는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州의 오크 파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사냥과 낚시를 즐겼고, 어머니는 음악을 좋아하는 신앙심 깊은 여인이었다. 여름이면 낚시와 사냥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북부 미시간의 왈룬 호반에 있는 별장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내성적인 어머니보다 행동적인 아버지를 닮은 헤밍웨이는 고교 시절에 풋볼, 수영, 권투, 음악, 사냥 그리고 문학 활동에 취미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체험을 쌓았다. 그런 경험들이 훗날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일관된 소재素材가 된다.
1918년 그의 나이 19세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적십자 요원으로 복무 중 중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서 석 달 동안 요양한 다음 다시 전선에 나갔다. 그때의 전쟁 체험이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의 배경이 되었다.
1921년 그의 나이 22세 때,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해서 토론토에서 살았다. 그 해 12월에는 《스타 위클리》지 유럽 특파원으로서 파리에 정착하였다.
1922년에는 셔우드 앤더슨의 소개로 거트루드 스타인과 에즈라 파운드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습작 시대를 맞이한 헤밍웨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1923년 《세 단편과 열 편의 시 Three Stories and Ten Poems》를 파리에서 처음 출판했다.
1926년엔 《봄의 격류 The Torrents of Spring》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를 출판했다. 1927년에 출판한 《남자만의 세계 Men Without Women》는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29년에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 넉 달 동안에 8만 부가 팔려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1932년 《오후의 죽음 Death in the Afternoon》, 1933년 《승자는 허무하다 Winner Take Nothing》를 출판했고, 1935년엔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The Green Hills of Africa》을 발표했다.
1936년 그의 나이 37세 때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정부군 원조의 자금 조달에 노력하는 한편 그해 아프리카를 소재로 한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과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를 발표하였다.
1937년 그의 나이 38세 때, 스페인에 가서 〈스페인의 대지〉라는 영화 제작에 협력하였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To Have and Have not》는 그 해 10월에 출판한 작품이다. 1940년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를 발표했는데 수십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1946년엔 메리 웰시와 네 번째 결혼을 했고, 1950년엔 《강을 건너 숲속으로 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를 출판했다.
1952년 그의 나이 53세 때 발표한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는 그에게 53년도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다.
1954년 1월엔 우간다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다치는 불운을 당한 한편 그 해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1961년 나이 62세 때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요양을 하고 있던 아이다호 주州의 자택에서 의문의 엽총 자살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백악관은 물론 바티칸 궁전과 크렘린에서도 이례적인 조의弔意를 표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1920년대의 ‘잃어버린 세대 Lost generation ’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인생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서 긍정적 태도로 전환하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이어 1940년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한 후 10년간 침묵을 지켰다. 그 이유는 그의 문학 세계가 부정적 태도에서 긍정적 태도로 변화된 이래 쓴 전기소설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해 소설을 쓸 필연성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그 후 1950년대에 이르러 헤밍웨이는 창작력이 쇠퇴했다는 비판의 소리를 깨뜨리고 《노인과 바다》를 발표해서 그의 면목을 회복시켰다.
《노인과 바다》1952는 헤밍웨이의 문학을 총결산하는 금자탑으로, 문학과 인생에 대한 그의 모럴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소재를 밝혀낸 키트 싱어에 의하면, 헤밍웨이가 부두에서 만난 어느 어부의 체험담을 작품화한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실존 인물인 마누엘 울리바리 몬테스판이라는 어부다. 그는 1963년에 쿠바에서 미국으로 망명해 왔다. 이 작품을 발표하기까지 200여 번이나 고쳐 썼다는 것만 보아도 헤밍웨이가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작가 자신도 《노인과 바다》를 가리켜 “내가 일생 동안 벼르던 작품을 끝내 쓴 것만 같다”고 말했다.
《노인과 바다》는 《뉴욕 타임스》가 ‘거장巨匠의 걸작품’이라고 극찬한 만큼 몇 가지 특징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그 속에서 인생에 대한 작가의 심오한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소박한 고기잡이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불굴의 정신으로 인종忍從하는 산티아고 노인으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노인은 대어大魚와 투쟁해서 이기지만 뜻하지 않은 상어떼의 습격을 받아 잔해殘骸만 남기고 다 빼앗긴다. 그러나 노인에게 후회란 없다. 오직 내일을 위해서 잠을 잘 뿐이다. 그 노인에게는 인생이 무의미하고 허무하지만 내일을 위해 자연의 법칙에 순종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는 그에겐 결코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도 어쩌면 망망한 바다 위에 조각배를 띄우고 낚시질하는 어부와 같을진대, 어떤 고경苦境 속에서도 꾸준히 버텨나간다면 결코 인생에서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산티아고 노인을 통해 인간 고업人間苦業에 인종하는 참 인간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근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그 속에 내포된 풍부한 상징을 발견할 수 있다.
노인과 소년을 비롯해서 바다, 구름, 돌고래, 상어, 야구선수, 사자 그리고 바다의 생물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바다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며, 노인은 인간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노인을 보살펴주는 소년에게서는 인인애隣人愛를 발견하게 되고, 노인이 떠올리는 야구시합과 야구선수에서는 인간의 상호 의존심과 고통을 참고 견디는 불굴의 정신을 생각하게 된다. 노을진 바닷가에서 노는 사자들에게서는 힘의 순결함과 평화를 연상하게 된다.
노인은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을 인간과 대등한 입장에서 보며 모든 물상을 인간과 같은 차원에서 본다. 심지어는 바람이나 침대, 별, 해, 달까지도 형제로 간주한다. 이것은 작가의 범애汎愛 정신의 극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어에 대해서 사랑과 존경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죽여야만 하는 것을 작가는 자연의 섭리라고 느낀다. 작가의 범애 정신은 자연의 섭리를 용인하는 범위 안에서 인정되고 있어 그의 윤리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간결하고 초점이 명확한 산문체를 지적할 수 있다.
문장의 대부분은 구어체며, 어법과 문장 구조가 단순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단어는 짧고 평범하며 어휘 사용에 있어서는 지극히 경제적이고 신선미가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탈고하기 전에 무려 200번이나 다시 읽었다고 한다. 단어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이 생생하게 이 작품을 엮어나갔다는 점에서도 그의 대가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원문을 우리말로 옮김에 있어, 헤밍웨이 작품의 진수眞髓를 음미하려는 독자를 위해서 어구 하나에도 소홀함 없는 충실한 번역이 되었는지 두려움이 앞선다. 혹시 본의 아닌 오역이나 오자 그리고 탈락 등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충고를 바랄 뿐이다.

옮긴이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州 시카고 서부 오크 파크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부친은 의사로서 사냥과 낚시에 취미를 가짐.

1909년
이 무렵부터 가끔 미시간 주 북부의 왈룬 호반으로 피서. 부친과 함께 사냥, 낚시 등 야외 운동에 몰두함.

1917년
오크 파크 고교 졸업. 4월에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졸업 직전 군軍에 지원했으나 왼쪽 눈이 나빠 불합격됨. 졸업 후 캔자스시티 《스타》 지 기자가 됨.

1918년
4월, 신문사 퇴사. 이탈리아 군의 적십자 요원으로 유럽 전선에 종군. 7월, 북이탈리아 전선에서 중상을 입어 밀라노 육군병원에서 3개월간 요양함. 퇴원 후 다시 이탈리아 보병부대에 소속됨. 이때의 체험이 〈무기여 잘 있거라〉의 배경이 됨.

1920년
제대. 정양 후 캐나다 토론토의 신문 기자가 됨. 가을, 시카고에 가서 셔우드 앤더슨을 만나 강렬한 자극을 받음.

1921년
봄, 다시 토론토의 《스타 위클리》 지의 서명 집필자가 됨. 9월,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 토론토에서 살았으며 12월에는 《스타 위클리》 지 유럽 특파원이 되어 파리에 정착함.

1922년
앤더슨의 소개로 거트루드 스타인과 만났고, 에즈라 파운드와 알게 됨. 3월엔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함. 이 해에 단편과 시를 처음으로 발표함.

1923년
첫 작품집 《세 단편과 열 편의 시 Three Stories and Ten Poems》 출판. 9월에는 파리 거주의 생활비를 구하러 토론토로 돌아옴.

1924년
파리에 머물면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함. 여름에 스페인을 여행함. 이때의 견문이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의 배경이 됨. 파리에서 단편집 《우리들 시대에 In Our Time》 출판.

1925년
《우리들 시대에》 증보판을 미국에서 출판.

1926년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의 원고를 4월에 완성함. 발라드풍의 소설 《봄의 격류 The Torrents of Spring》 출판.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를 10월에 출판. 아내 해들리와 이혼함.

1927년
제2단편집 《남자만의 세계 Men Without Women》 출판.

1928년
〈무기여 잘 있거라〉 집필을 시작. 귀국하여 플로리다 주 최남단 키웨스트에 거주. 8월 말 와이오밍 주 빅혼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탈고. 부친이 엽총 오발로 사망함.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를 잡지에 연재, 출판. 4개월 동안 8만 부가 팔려 일약 문명文名을 높임.

1930년
자동차 사고로 몬태나 주에서 입원 가료.

1931년
스페인을 여행, 투우에 관한 상세한 연구서 〈오후의 죽음〉 집필 시작.

1932년
《오후의 죽음 Death in the Afternoon》 출판.

1933년
제3단편집 《승자는 허무하다 Winner Take Nothing》 출판. 부인과 동반하여 동아프리카에 수렵 여행.

1934년
〈아프리카 여행기〉 집필 시작.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제1부를 잡지에 발표.

1935년
여행기를 잡지에 연재.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The Green Hills of Africa 출판.

1936년
7월에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 정부군 원조 자금 조달에 노력함.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고 행복한 생애〉발표.

1937년
스페인 정부군 원조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함. 스페인에 가서 영화 〈스페인의 대지大地〉 제작에 협력함. 6월, 뉴욕으로 돌아와 전미작가회의全美作家會議에서 처음으로 공식 연설을 함.

1938년
종군기 및 영화 〈스페인의 대지 The Spanish Earth〉, 《제5열 및 최초의 49단편 The Fifth Column and the First Fortynine Stories 》 출판.

1939년
3월, 마드리드 함락, 프랑코측의 승리로 끝남.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집필에 착수.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출판. 다시 이혼, 여류작가 마더 겔혼과 결혼함.

1941년
중일전쟁의 특파원으로서 중국 방면을 여행한 후 아바나 근교에 거처를 정함.

1942년
작품집 《싸우는 사람들 Men At War》 출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귀국함.

1946년
세 번째 이혼, 《타임》 지 특파원 메리 웰시와 네 번째 결혼.

1949년
이탈리아에 체재. 이 무렵 눈을 다침.

1950년
《강을 건너 숲속으로 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 출판.

1951년
〈노인과 바다〉 집필.

1952년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출판, 퓰리처상 1953년도을 받음.

1953년
부인 동반으로 아프리카 여행.

1954년
1월 23일, 영국령 우간다에서 비행기 사고로 추락, 무사히 탈출함. 노벨문학상을 받음.

1958년
아프리카를 여행함.

1960년
《라이프》지에 〈위험한 여름 The Dangerous Sum-mer〉 발표.

1961년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아이다호 주의 자택에서 요양하던 중, 7월 2일 아침, 의문의 엽총 자살을 함.

1964년
유작遺作인 파리 시대 청춘회상기인 《이동축제일 A Movable Feast 》이 간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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