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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걸어온 길(외)

1. 이 책은 손진태의 논저 중 신민족주의 사학의 이론을 대표하는 글과 민속학 관련 글 중 문학 분야에서 주목하는 것들을 선별하여 묶은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민속학 관련 글이 앞서지만, 신민족주의 역사가로서의 손진태의 위상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주요 저서의 자서自序와 서설序說을 모아 먼저 실었다. 그리고 실천적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줄 수 있는 글 3편도 함께 실었다. 민속학 관련 글은 우리말과 일본어로 발표된 것 중 문학적으로 주목받았으되, 현학적이거나 난해하지 않아 읽기 편한 작품을 실었다. 2. 이 책은 1981년에 발간된 《손진태선생전집》(1~6권, 태학사)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전집은 손진태의 저서와 논문 중 우리 말로 발표된 것들은 현대적인 표기법으로 바꾸고, 일본어로 발표된 것들은 번역해서..
1. 이 책은 손진태의 논저 중 신민족주의 사학의 이론을 대표하는 글과 민속학 관련 글 중 문학 분야에서 주목하는 것들을 선별하여 묶은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민속학 관련 글이 앞서지만, 신민족주의 역사가로서의 손진태의 위상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주요 저서의 자서自序와 서설序說을 모아 먼저 실었다. 그리고 실천적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줄 수 있는 글 3편도 함께 실었다. 민속학 관련 글은 우리말과 일본어로 발표된 것 중 문학적으로 주목받았으되, 현학적이거나 난해하지 않아 읽기 편한 작품을 실었다.
2. 이 책은 1981년에 발간된 《손진태선생전집》(1~6권, 태학사)을 저본으로 하고 있다. 전집은 손진태의 저서와 논문 중 우리 말로 발표된 것들은 현대적인 표기법으로 바꾸고, 일본어로 발표된 것들은 번역해서 싣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선별된 작품을 전집과 원본을 비교하여 되도록이면 원본의 문체를 훼손하지 않은 범위에서 독자들이 읽기 쉬운 현대 표기로 바꾸고자 하였다.
3. 현대 표기로 고치되, 내용 이해에 필요한 한자는 부기하였다. 어려운 내용이나 한자 구절에는 주석을 달았다.
1900년
경남 동래군 사하면 하단리에서 출생.

1919년
곡물상을 하던 중 구포장터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됨. 부산 감옥에서 4개월 징역살이를 함.

1921년
중동학교 졸업(15회).

1923년
〈신화상에 본 고대인의 여성관〉을 《신여성》 2호에 발표. 〈만수산에서〉, 〈짝사랑〉, 〈별똥〉,〈달〉 등을 《금성》 1호에 발표.

1924년
와세다 제1고등학원 졸업. 〈처녀의 비밀〉, 〈나의 마음〉, 〈외로운 혼〉, 〈병든 강아지〉, 〈신선바위에서〉, 〈둔세자의 눈〉을 《금성》 2호에 발표. 〈생의 철학〉외 3편을 《금성》 3호에 발표.

1925년
〈조선의 샤머니즘〉을 《동양》 11호에 발표.

1926년
〈시베리아 각 민족의 혼인 형태〉를 《신여성》 26호에 발표. 〈토속연구여행기〉를 《신민》 13호에 발표. 〈시조와 시조에 표현된 조선사람〉을 《신민》 15호에 발표. 〈조선상고문화연구〉를 《신민》 16·17·18·19호에 발표. 〈금태조는 황해도인이라〉를 《신민》 20호에 발표.

1927년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 졸업. 〈조선의 동요와 아동성〉을 《신민》 22호에 발표. 〈조선상고문화연구〉를 《동광》 11·12·14·15·16호에 발표. 〈반드시 고형固形을 고집함은 퇴보〉를 《신민》 23호에 발표. 〈온돌문화전파고〉를 《신민》 24호에 발표. 〈조선민족의 구성과 그 문화〉를 《신민》 28·29·30호에 발표(《조선사상통신》438~449호에 12회에 걸쳐 연재), 〈조선민간설화연구〉를 《신민》 27호부터 연재 시작(1929년 48호까지).

1928년
〈기미전후의 문화상〉을 《신민》 33호에 발표. 〈개미전설〉과 〈온돌예찬〉을 《별건곤》 12·13합병호에 발표. 〈조선지나민족의 원시신앙연구-광명에 관한 신앙과 태양숭배의 기인〉을 《여시》 1·2호에 발표. 〈최근 조선사회상의 변천〉을 《동양학보》 23호에 발표.

1929년
일본 도쿄에서 《조선고가요집》을 펴냄. 〈독서여록2제〉를 《신생》 2권 9호에 발표.

1930년
동양문고 사서로 근무. 일본 도쿄에서 《조선신가유편》와 《조선민요집》을 펴냄. 〈맹인고〉를 《신민》 6권 1호에 발표. 〈처용랑전설고〉를 《신생》 3권 1호에 발표. 〈동경과 처용가에 대하여-안자산에 답함〉을 《신생》 3권 4호에 발표. 〈지나의 무巫에 대하여〉를 《민속학》 2권4호에 발표. 〈태자무녀고〉를 《신민》 6권5호에 발표. 〈동방기속〉을 《신생》 3권10호에 발표.

1931년
〈조선욕설고〉를 《신생》 4권 1호에 발표. 〈지나와 조선에서의 복화술에 대하여〉를 《향토연구》 5권 4호에 발표. 〈무巫의 복화술 추기〉를 《향토연구》 5권 5호에 발표. 〈조선온돌고〉를 《향토연구》 5권 6·7호에 발표. 〈조선불교의 국민문학-불도의 남긴 국민문학〉을 《불교》 86호부터 연재(1932년 92호까지).

1932년
부인 연영화 여사와 결혼. 일본 도쿄에서 《명엽지해》를 펴냄. 〈태자명도의 무칭에 대하여〉를 《여旅와 전설》 6권1호에 발표. 〈민속채방여록〉을 《향토연구》 6권4호에 발표. 〈소도고〉를 《민속학》 4권4호에 발표.

1933년
〈조선의 약과掠寡습속에 대하여〉를 《여旅와 전설》 6권 3호에 발표.〈생고栍考〉와 〈강계의 정월세사〉를 《조선민속》 1호에 발표. 〈부락 내 부속部俗의 연구〉를 《향토연구》 7권 2호에 발표. 〈조선의 약과습속 보유〉를 《여旅와 전설》 6권 3호에 발표. 〈소도고 속보〉를 《민속학》 5권 4호에 발표. 〈조선민가형식소고〉를 《민속학》 5권 5·6·9호에 발표. 〈조선의 돌멘에 대하여〉를 《あ》 5권 6호에 발표. 〈잉화도의 근친혼속〉을 《민속학》 5권 7호에 발표. 〈조선의 솔서혼속에 대하여〉를 《사관》 3호에 발표. 〈조선의 돌멘에 대하여〉를 《민속학》 5권 6호에 발표. 〈조선민속채방록〉을 《ドルメン》 2권 7호에 발표. 〈장생고〉를 《이치무라市村 박사 고희기념 동양사논총》에 발표. 〈석전고〉를 《민속학》 5권 9호에 발표. 〈조선돌멘고 추보〉를 《민속학》 5권 9호에 발표.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씨의 조선민간신앙의 4부작을 읽고서〉를 《민속학》 5권 10호에 발표. 〈측厠에 있어서 조선민간에 대하여〉를 《ドルメン》 2권 11호에 발표.〈조선의 누석단과 몽고의 악박鄂博에 대하여〉를 《민속학》 5권 12호에 발표.

1934년
연희전문학교 강사(동양사), 보성전문학교 강사(문명사) 겸 도서관 사서. 〈강계 채삼자의 습속〉을 《조선민속》 2호에 발표. 〈오대강산의 전설신화와 그 고구〉를 《신동아》 4권7호에 발표. 〈조선심과 조선민속〉을 《동아일보》 10월 10일부터 19일까지 7회 연재. 〈조선고대산신産神의 성性에 대하여〉를 《진단학보》 1호에 발표. 〈조선돌멘고〉를 《개벽》 1권 1호에 발표. 〈조선솔서혼제고〉를 《개벽》 1권 2호에 발표.

1935년
〈전설에 나타난 돼지 이야기〉를 《동아일보》 1월 1일부터 10일까지 7회 연재. 〈경주〉를 《동아일보》 9월 19일부터 28일까지 6회 연재. 〈조선무격의 신가神歌〉 1-42를 《청구학총》 20·22·23·28호(1937년까지)에 발표. 〈지나민족의 계웅鷄雄신앙과 그 전설〉을 《진단학보》 3호에 발표.

1936년
〈온돌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나〉를 《조광》 2권 1호에 발표. 〈포천송우리장생조사기〉를 《조광》 2권 2호에 발표. 〈중화민족의 혼에 관한 신앙과 학설〉을 《진단학보》 4·5호에 발표.

1937년
보성전문학교 전임강사, 도서관장. 〈맹자와 사회사상〉을 《학등》에 발표.

1939년
보성전문학교 교수, 도서관장. 〈지게〉를 《박문》 2권 3호에 발표. 〈단군檀君 단군 壇君〉을 《문장》 1권 3호에 발표.

1940년
〈무가의 신가〉를 《문장》 2권 7호에 발표. 〈조선감저전파고〉를 《서문동호회회보》 9호에 발표. 〈수문록〉을 《조선민속》 3호에 발표. 〈소도고 정보〉를 《조선민속》 3호에 발표.

1941년
〈성달생필사경불존본(보전편)〉을 《춘추》 2권 3호에 발표. 〈감저전파고〉를 《진단학보》 13호에 발표. 〈향토예술과 농촌오락의 진흥책〉을 《삼천리》 13권 4호에 발표.

1943년
〈유교와 조선〉을 《반도사화와 낙토만주》에 발표.

1945년
경성대학교 사학과 교수.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

1947년
《조선민족설화의 연구》를 을유문화사에서 출간. 〈국사교육의 기본적 제문제〉를 《조선교육》 1권 2호에 발표. 〈조선민족사개론〉을 《조선교육》 4~12호에 연재(1948년까지).

1948년
문교부 차관 겸 편수국장. 《조선민족문화의 연구》와 《조선민족사개론》(상)을 을유문화사에서 출간. 《우리 민족의 걸어온 길》을 국제문화사에서 출간. 〈화랑제도와 그 역사적 의의〉를 《현대문감》(서울대 출판부)에 발표. 〈국사교육 건설에 대한 구상〉을 《새교육》 1호에 발표.

1949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장. 《국사대요》를 을유문화사에서 출간. 〈삼국유사의 사회사적 고찰〉을 《학풍》 2권 1·2호에 발표. 〈한국민족의 유래와 형성-민속학적 논증〉을 《대한인류학회》 3권 2호에 발표.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장, 서울 수복 직전 납북. 《국사강화》를 을유문화사에서 출간. 《이웃나라의 생활》을 탐구당에서 출간.

1960년대 중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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